기념탑과 사탑(寺塔)

Ο 현충탑

1950년 ~ 1953년 7월 27일 사이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휴전이 될 때까지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몰한 강화출신 군경 및 유격대원들의 위패를 보관하고 이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1953년 10월 건립되었으며 1993년 6월 현위치에 재 건립 하였다.

이 현충탑에는 강화군 출신 전몰군경 1,033위, 국군 735 특공대 18, 경찰관 36, 유격군 2,241를 각인하여 모시고 있다.


 

Ο  강화 참전 기념탑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6.25 전쟁 및 월남전에 참전하여 희생·공헌한 6.25 참전유공자회 강화군지회와 월남참전유공전우회 강화지회 회원, 그리고 어린나이에 학업을 중단하고 오직 구국과 고장 강화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군번없는 군인으로 6.25 전정에 참전하여 적과 맞서싸운 강화지역 3개 소년대원 회원(강화 향토방위특공대, 6.25참전국가유공자 강화 청소년 유격 동지회, 6.25참전유공자 강화청소년유격대 기념사업회)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전·후 세대들의 투철한 나라정신 함양과 지역안보의 산 교육의 장으로 활욯하기 위해 인천광역시로 부터 사업비 9억원을 지원받아 강화군 재향군인회와 5개단체가 정성을 모아 2010년 5월에 건립한 것이다.


Ο 반공유격용사 위령탑

1950년 10월30일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이 후퇴할 때 강화도를 사수하기 위하여 이곳 반공 청년들과 이북으로 부터 피난 나온 애국청년 1,240명이 유격대를 조직하여 북한 공산괴뢰군과 접전하는 동시에 연백군, 개풍군, 개성까지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많은 정공을 세웠다.

당시 전과 : 적 사상 6,277명(사살 2,746. 부상 3,151. 생포 213, 귀순167)
노획 : 직사포 1문, 박격포 1분, 트럭3대, 지뢰 748개, 전화기 3대, 실탄85,527발, 우마차 12량, 소제오토바이1대
파괴 : 트럭30대, 우마차25량, 포대2개소, 교랑25개소, 선박2척, 초소 및 건물 등 102동, 전주24주

이를 기리고 산화한 516명의 호국 영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2008년 7월 3일 재 건립하였다.


Ο 어재연 장군 상

조선 후기의 무장.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때 강화도 앞바다에 침입한 프랑스와 미국에 맞서 싸워 나라를 지킨 장군이다. 특히 신미양요 때 600명의 군사로 미국 군함 5대와 1,230명의 군사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다가 전사했다.

어재연 장군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광성보 입구에 어재연장군 상을 설립하였다.


Ο  강화 장정리 오층석탑

고려후기의 석탑으로 일명 봉천탑이라고도 한다. 일찍이 쓰러져 파손되었던 것을 1960년에 각 부재를 수습하여 보수 재건하였다. 그러나 파손이 심하고 없어진 부재도 많아 현재는 3층 이상의 옥신(屋身)과 5층 옥개석(屋蓋石), 그리고 상륜 부재가 모두 유실된 상태다.

이 석탑은 단층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건립하고 정상에 상륜부를 장식한 방형중층(方形重層)의 일반형 석탑으로 여러 개의 장대석으로 지대를 구축하고 그 위에 기단을 받치고 있다. 기단면석은 4매석으로 구성되었는데 2면은 우주가 있는 판석이고 다른 2면은 면석만으로 되었고, 탱주(撑柱)는 모각되지 않았다. 갑석(甲石)은 두꺼운 1장의 판석을 덮고 있는데, 아랫면에는 부연(副椽)도 없다. 윗면은 약간의 경사가 있고 중앙에는 1단의 굄대를 마련하여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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