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슬재와 갑곶리의 민간인 학살지

강화는 한국전쟁 당시 38도선에 인접한데다 적접지역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반공교육이 철저하게 펼쳐진 탓인지 모르지만 공산주의 또는 북한 정권에 대한 적개심이 강해 한국전쟁 발발 전부터 우익단체가 기세를 떨쳤고 그 여파로 전쟁이 발발하자 우익반공단체가 난립했다는 사실, 강화의 수복과 반공투쟁에 헌신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북한군 점령시기 좌익에 의한 우익인사와 그 가족들에 대한 학살이 자행되었으며 9·28 수복 후에는 이에 대한 보복차원에서 우익단체에 의한 좌익 또는 부역자와 그 가족에 대한 검거선풍이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1953년 7월 휴전 이후 대부분의 우익단체가 해체되었다. 그러나 소속원들 중 이미 타계한 사람도 적지 않지만 대부분이 강화의 유지노릇을 하고 있었다. 이들이 유격활동 과정에서 있었던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 양심적 고해를 하지 않는 한 그 실체를 파악하기 힘들 것이다.

아마 전국 곳곳에서 있었던 민간인 학살사건 중 그 실마리를 풀어가는데 가장 난점이 많은 지역일지도 모른다.

Ο 온수리 사슬재 민간인 학살지

사슬재 민간인 학살지(길상면 온수리 43-3 산 중턱)는 1951년 1.4후퇴 당시 강화지역 주민 400여명이 억울하게 집단학살돼 암매장 되었다는 결정이 나온 뒤인 2008년 11월 세워졌고 2011년 추모공원 개막식을 거행 하였다.


Ο 강화읍 갑곶리 민간인 학살지

강화교(구 대교) 밑의 갑곶나루 선착장지는 1951년 1.4 후퇴 당시 강화향토방위 특공대에 의해 부역자의 가족, 70세가 넘은 할머니 집에서 살림만 하던 부녀자 1살 먹은 아기 등 아무죄도 없는 억울한 인명을 마구 재판절차도 거치지 않고 무참하게 살해한 장소이다.

1951년1월6일에서 8일까지 남자45면 부녀자 15명이고 그 후 각 해안에서 희생자 수는 약 3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자료제공 : 강화 양민학살 희생자 유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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