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떠난 보물 제652호/제495호

Ο 강도지(江都志) 보물 제652호

2책으로 된 『강도지』는  조선 숙종 때의 국학자이자 실학의 선구자였던 병와 이형상(1653∼1733)이 양주목사직에서 파면된 뒤 강화도에 은거할 때 저술, 남긴 친필 원고본이다.

이형상의 자는 중옥(仲玉), 호는 병와·순옹(順翁), 본관은 전주(全州), 효령대군의 10대손이다. 1677년(숙종 3)에 사마시, 1680년(숙종 6)에 문과에 급제한 후 호조좌랑·청주목사·동래부사·제주목사 등을 지냈다.

그 후 벼슬을 사양하고 영천에 호연정(浩然亭)을 짓고 30여 년 간을 후학 양성과 저술에 전념했다. 그의 학문 영역은 매우 넓고 깊어서 경학 및 성리학을 비롯하여 예학·역사·전기·지리·시문에 이르는 넓은 분야를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서 다루고 있다. 그는 저서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간찰·교지 등의 고문서와 인각, 기타 유품도 남겨 놓았다.

다른 도지는 지지(地誌)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나, 이 책은 강화도가 국방상의 요충지이며 국가사직보장의 일대 관문임을 인식하여 수어방략(외적의 침입을 막는 방법과 계략)까지 전개하였다.
글의 첫머리에는 3색으로 그려진 가로 40㎝, 세로 29㎝ 크기의 강화도 지도가 수록되어있다.
완산이씨병와공파종회(경북 영천)에서 소유하고 있다.


 

Ο 고성 옥천사 청동북 (固城 玉泉寺 靑銅金鼓)

보물 제495호

고성 옥천사 청동북(固城 玉泉寺 靑銅金鼓)은 절에서 사용하는 청동으로 만든 소리내는 도구이다. 금고 또는 금구반자라고도 하며 절에서 대중을 불러모으거나, 의식을 행할때 두드려서 소리내도록 하였다.

이 쇠북은 지름 55㎝, 너비 14㎝로, 표면에 굵고 가는 선으로 4개의 테두리를 둘러 4개의 원을 만들었다. 중심원에는 6개의 둥근 연꽃열매가 돌출 되어 있으며, 그 다음 원에는 연꽃잎이 겹쳐서 도드라지게 새겨있다. 가장 바깥 원에는 덩굴무늬가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고, 그 안쪽의 원에는 아무런 무늬가 없다.

옆면은 중앙에 굵게 돌출된 선이 있어 위 아래로 구분되고, 선 위로 둥근 모양의 고리가 3개 있어 매달 수 있게 되어 있다. 옆면 위쪽에 쓰인 명문의 내용을 통해 명칭을 반자(飯子)로 불렀으며 고려 고종 39년(1252)에 한중서(韓仲敍)라는 장인에 의해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쇠북은 처음부터 옥천사에서 전해진 것이 아니라 1252년(고종 39)에 서울[강화경]에서 주성되어 지리산 안양사에서 사용되었던 것인데 언제부터 옥천사에 보관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고면(鼓面)의 무늬가 뚜렷하고 손상이 없으며, 옆면의 글을 통해 만든 시기와 유래, 발원자와 제작자까지를 알 수 있어 당시 고려 장인사회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 출처 : 문화재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