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도

Ο 월선포

선멀(배를 짓던마을) 앞에 있는 포구인데 달밤에 선멀서 바라보면 고요한 바다위에 둥근 달이 비치니 바닷물 속에도 달, 하늘에도 달, 겸하여 노송이 물위에 비치니 그 광경이 달의 신선이라 하여 월선이라 하였으며 이태백이 놀던 자리같다 하여 월선포라 전해지고 있다. 교동대교 개통 전까지 강화본도의 창후리 포구와 여객선이 운항 되었다.  조수간만의 차이가 심하여 운항시간의 차이가 많이났다.


Ο 죽산포

옛날 이 포구에 배가 많이 정박하여 배의 돛대가 마치 대나무숲과 같다하여 죽산동 또는 죽산포라 하였다.


Ο 남산포

남산포는 진망산(남산) 밑에 있는 포구이다.  이곳에 선창이 있었고 선창의 이름이 대빈창 이다. 진망산에 사신관지와 사신당이 있었으며 중국으로 오가던 사신들이 주로 이용한 포구라 할 수있다.

이후 조선시대의 경기수영지에서 삼도통어영(전 함정 정박장)으로 군사시설이 주둔해 있었다.

현재 선착장은 콘크리트로 잘 정리되어 옛 모습을 볼 수 없다.


Ο 빈장포

교동면 양갑리 빈장산 동쪽 끝에 있는 포구로서 서해안 고기잡이 나가는 포구였으며 포구로 한국전쟁 이전 들어오는 돛단배가 장관으로 볼만하였다고 한다.


Ο 말탄포

교동도 서한리에 있는 말탄포의 말탄은 맨 끝에 있는 여울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우측으로 보이는 작은섬이 월미봉이며 중국배들이 기착하여 잠시 쉬어가던 곳이라 전해진다. 지금은 철조망으로 가로막아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Ο 율두포

교동면 지석리 율두산 북쪽에 있는 포구로 황해도 연백군과 연결되는 나루터를 율두포라 하는데 글자 풀이로 밤머리가 바머리로 불린다.


Ο 북진나루

교동의 북쪽 문호역할을 했으며 연안과 해주로 통하였다. 민재를 사이에 두고 동편동과 서편동이라 하였고 어진 선비가 사는 마을이라 하여 민재라 불렀으며 이 나루를 민재나루 라고도 하며 인점진이라고 하는데 예전에는 강화본도, 개풍, 김포를 거쳐 마포로 통하는 뱃길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연안을 완래 하였다.

교동읍지에는 북진나루터에 조선 선조2년부터 13년 육지가 형성되어 연안사이에 인마가 통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Ο 낙두포

고구리에 있는 포구로 고을의 문호였으며 고려 때 개성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며 주로 곡식을 실어 날랐던 포구라 한다.


Ο 호두포

교동도 봉소리의 이 마을산이 범의 머리형상이어서 호두포라 전해지고 있다.

휴전선이 생기기 전까지 호두포는 조수간만의 영향을 받지않는 주요 포구였기 때문에 매우 번화하였다.


Ο 동진나루

< 자료 : 교동사랑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