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면

신라 경덕왕때부터 교동현 즉, 큰오동나무 고을이라 칭하였으며 1934년 종래의 교동현의 이름을 따라 교동면으로 부르고 있다.

대룡리(大龍里)

옛날 이 마을에서 역마를 사육하여 대역촌(大驛村)이라 부르다가 뒤에 대아촌으로 개칭하였다. 교동의 중심이 되는 큰 마을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대룡리라 하였다.

대명(大明) : 매바지와 방골을 합쳐서 대명이라 부르고 있으며 대명은 하늘에 제사지내는 마을이란 뜻에서 유래된 듯 하다.

대아촌(大雅村) : 대룡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역마를 사육하여 대역촌으로 부르다가 대아촌으로 개칭하였다.

매바지 : 방골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매의 모습과 흡사하여 매바지라 하였으며 응수동이라고도 부른다.

방골(方谷) : 대촌 남쪽에 있는 마을로 온양 방씨가 세거해 온 마을이라 방골이라 부른다.

부시미산(富示米山) : 매바지 서쪽 바닷가에 있는 산이다. 쌀이 풍부하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지만 옛날 양갑리 사람들이 농사가 잘되지 않아 몹시 가난하게 살았는데 마을에 마음씨 곱고 착한 사람이 매일 새벽 부시미산에 올라가 우리마을도 잘 살게 해 달라고 신에게 빌었는데 하루는 꿈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나타나 빈장산과 부시미산 사이에 작고 낮은 산이 많은데 그 흙과 나무를 전부 치워버리면 잘 살것이라고 말한 후 사라졌다. 꿈이 이상해 그 사연을 마을 사람들에게 말해 온 동네가 합심하여 그대로 하였더니 그후부터 언제나 풍년이 들어 잘 살게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하였다.

장승마루 : 금정산 기슭에 나무로 만든 장승이 서 있던 고개마루를 장승마루라 부른다.

조개맨들 : 흔다리 서쪽에 있는 들로 조개껍질이 많은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제비 : 마을모양이 제비가 깃을 들이고 있는 형태라 제비라 부른다.

천자현(天字峴) : 토지의 지번을 설정할 때 천자문의 순서대로 맨먼저 붙여진 곳이라 천자현이라 부른다.

읍내리(邑內里)

1629년(인조 7) 교동부의 치소(治所)를 고구리에서 이곳으로 옮긴 이후 읍내리라 칭하고 있다.

대변창(待變艙) : 남산포가에 있는 마을로 옛 교동부 시절 대변창이란 군사기지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문무정(文武井) : 읍내리 북쪽 화개산 남쪽에 있던 샘으로 동서로 두 개가 있어 동쪽 것을 문정, 서쪽 것을 무정이라 하였는데 문정에 물이 많으면 무정의 물이 줄어들고 고을에서 문관급제가 많이 나고 그 반대로 무정의 물이 넘치면 문정의 물이 줄고 무관급제가 많이 났으므로 문정, 무정을 통틀어 문무정이라 하였다.

사신관(使臣館)터 : 고려때 중국의 사신이 뱃길로 도착하는 것을 맞이하던 곳이라 사신관이라 하였으며 바닷가 자연석에 정으로 쪼아 만든 층대가 있는데 배를 타기위해 만든 것이라 한다.

사신당(使臣堂) : 옛날에 우리나라와 중국사이에 사신이 왕래할 때 뱃길이 무사하기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던 당집에서 유래되었다.

상여바위 : 동진포 동남쪽에 있는 여로 상여와 비슷하다고 하여 상여바위라 하였으며 일설은 매같이 생겨 매바위라고도 부른다.

성내(城內) : 교동읍성에 있는 마을이라 성내라고 칭한다.

영말레 : 장거리 위쪽 마루터기에 있는 마을로 옛날 신임 수령이 부임해 올 때 이곳에서 영접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고개를 뜻하는 마루가 변하여 말레가 되었다.

영창말 : 남문밖 서쪽에 있는 마을로 교동진영의 창고가 있어 영창말이라고 하였으며 영청멀로도 부른다.

절아래(寺下洞) : 읍내 서북쪽 화개사 아래에 있어 절아래라 부른다.

진망산(鎭望山) : 읍내 서남쪽에 있는 일명 남산으로 조선시대에 봉수가 있어 서남쪽의 말도 봉수를 받아 교동진영에 전한데서 유래되었다.

화개산성터 : 화개산에 있는 성터라 붙인 이름으로 내외성이 있었는데 그 연대는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옛 교동현에서 축조한 것으로 1555년 최재운이 산성을 개축하고 1591년에는 이여양이 외성을 헐고 읍성을 쌓았다고 한다.

상룡리(上龍里)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동면 상방리(上坊里)와 남면 용정리(龍井里)를 병합하고 상방리의 상(上)자와 용정리의 용(龍)자를 따서 상룡리라 하였다.

낭아래 : 법장에서 쑥고개로 가는 길목에 험준한 낭떠러지가 있어 낭아래라고 부른다.

달우물 : 이 마을에 달이 뜨면 우물에 달빛이 비추는데 매우 아름답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일명 월정(月井)이라고도 한다.

뜬구지 : 본래 부곡동(浮谷洞)으로 뜬 골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마방(馬房) : 역참이 있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마필을 기르던 마방에서 유래되었다.

법장동(法杖洞) : 승려들이 사용하는 법장을 만들던 마을로 법장동으로 부른다.

북달이고개 : 뜬구지 서쪽에서 고구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북이 달려 있던 고개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상방(上坊) : 윗말이란 뜻으로 동면에 속했던 뜬구지와 법장동을 합쳐서 부르는 지명이다.

송림(松林)고개 : 뜬구지 남쪽에서 미르물로 넘어가는 고개로 소나무가 무성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월선(月船) : 예전에 배를 만들었던 마을이라 선멀 선촌이라 하였는데 광복 후 월선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용정(龍井) : 용이 승천했다고 전해오는 우물이 있어 붙여진 지명으로 속칭 미루물 또는 미르물이라 부른다.

탄현(炭峴) : 옛날 이곳에서 숯을 구웠다하여 숯고개라 부르며 그 고개 밑에 마을도 숯고개로 칭한다.

봉소리(鳳韶里)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종전의 말곶리(唜串里)를 버리고 봉황동(鳳凰洞)과 소소동(簫韶洞)에서 한글자씩 따서 봉소리라 하였다.

되투리 : 도를 통했다는 뜻의 도통리(道通里)라 하였다가 와전되어 되투리라 부른다고 한다.

말곶리(唜串里) : 말곶은 끝곶 즉 끝곶에 있는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서재(書齋)마을 : 되투리 위쪽마을로 신천영(申天榮)의 서재가 있어 붙여진 지명이다.

신골(申谷) : 붉은고개 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신씨가 많이 살았다하여 신골이라 부른다.

종모루 : 마을 뒤 마루터기에 큰 종이 걸려 있어 종모루라 부른다고 하며 일설에는 조선시대 이래 이씨들이 대종을 이루고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통수골 : 신골 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홍수가 나면 이 마을 골짜기로 물이 모여 흐른다고 하여 통수골이라 부른다.

호소(虎韶) : 호두포(虎頭浦) 가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범의 머리와 비슷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속칭 버머리라고 부른다.

홍현(紅峴) : 마을 일대에 붉은 흙이 많아 붙여진 지명으로 속칭 붉은고개라고 부른다.

고구리(古龜里)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고읍리(古邑里)와 구산리(龜山里)를 병합하여 고구리라 하였다.

가장골 : 구산리가 거북이 형상이며 가장골은 거북이의 가장자리쯤에 해당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유래되었다.

고랑멀 : 마을이 깊숙히 후미진 곳에 자리잡은 지형에서 유래하였다.

고읍(古邑) : 옛 교동현시절 고을 소재지 마을이라 고읍이라 부른다.

구산(龜山) : 마을 지형이 거북이 같은 형상이라 하여 구산이라 하였다.

독고개 : 고읍 북쪽 고개 밑에 있는 마을로 이곳에 돌이 많다고하여 독고개라 하였으며 석현(石峴)으로도 부른다.

병풍바위 : 절골에 있는 바위로 바위모양이 마치 병풍을 둘러친것 같이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빙구테 : 옥모루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교동 고을의 빙고가 있어 빙구테라 부른다.

사잣매 : 생깃골 남쪽에 있는 산으로 옛 교동 고을의 사직단이 있어 붙여진 지명으로 사직단은 1852년(철종 3)에 이곳에서 읍내리 진망산으로 옮기었다.

생깃골 : 종모루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고읍리에 교동 고을이 있었을 때 향교가 있었다하여 불러온 이름으로 향곳골로도 부른다.

성안 : 옛 교동현 성터가 있는 안쪽마을이라 성안이라 하였다.

송계(松溪) : 옛날부터 소나무가 많았고 마을 앞으로 시내가 흐른다고 하여 송계라 부른다.

연산골(燕山谷) : 연산군이 유배되어 병사한 곳이라고 전하는 골짜기라 하여 유래되었다.

옥모루 : 중빵 서남쪽에 있는 버덩으로 옛 교동현의 옥이 있던 곳이라 옥모루라 부른다.

중현(中峴) : 고구리의 중앙에 있는 마을로 중모루고개 밑에 있어 붙여진 지명으로 중마루 또는 중모루라고도 부른다.

삼선리(三仙里)

원래 북면 소속으로 독지리(禿旨里)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비곶리(斐串里)와 건지암리(乾支岩里) 일부를 합하고 삼선리라 하였다.

가오라지 : 본래 개오동(開梧洞)이었는데 지금과 같이 개칭된 것으로 곡암(谷岩)이라고도 부른다.

독지리 : 지형이 무지러진 손가락 모양과 흡사하다고 하여 무지니라 칭하였고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독지리이다.

비살곶(非士乙串) : 바닷가로 뻗은 산과 곶이 있는 마을에서 유래되었으며 선암(仙岩)이라고도 부르며 일명 비살고지, 비살구지로도 부른다.

팔도(八道)들 : 무지니 동남쪽에 있는 들로 여덟 갈래의 길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인사리(仁士里)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종래의 북면 인현리(仁峴里)에 비사을곶리(非士乙串里)의 일부를 합하고 두마을에서 한글자씩 따서 인사리라 하였다.

대젱이 고랭이 : 풀모기 서남쪽에서 삼선리의 아랫기재로 넘어가는 고개로 대장간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민재 : 인사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인산, 인현, 인현동, 인재로도 부른다.

우물네골 : 풀모기 남쪽 고을에 있는 마을로 우물이 네 개가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사정동(四井洞)이라고도 부른다.

초목(草木) : 이 마을은 다른 마을에 비하여 초목이 많아 붙여진 이름으로 속칭 풀모기라고 부른다.

풀모기 : 민재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뒷산에 풀이 많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지석리(芝石里)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북면 돌곶리(乭串里)와 건지암리를 병합하고 지석리라 하였다.

건지암 : 마을 입구에 사람이 수건을 쓴 형상의 바위가 있어 건암이라고도 부른다.

돌곶리 : 돌은 우리말 돌의 취음으로 즉 돌이 많아 유래되었다.

바머리 나루터 : 바머리에 있는 나루터를 말하며 바머리는 한자로 율두진(栗頭津)으로 이것을 한글로 풀어쓴 것이다.

수건바우 : 선양골 남쪽에 있는 바위이다. 사람이 수건을 쓴 것처럼 생겼으며 예전에 건지암에 부자가 많이 살았는데 모두 욕심이 많고 인색하여 중이 동냥하러 왔으나 한 사람도 시주하지 않으니 중이 돌아가면서 혼자 말로 “이 바위만 깨뜨리면 이 마을이 더 큰 부촌이 될 더인데”하는 말을 듣고 바위를 깨뜨린 뒤로 가난한 마을이 되었다고 전한다.

오현(鰲峴) : 마을 형상이 자라꼬리같아 오미라 부르다가 광복 후 오현으로 개칭하였다.

절너머 : 바머리 남쪽 화양골 너머에 있는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화양골(華陽谷) : 옛날 화양사가 있던 마을에서 유래되었으며 서남골이라고도 부른다.

무학리(舞鶴里)

종래의 북면 무서산리(無鼠山里)로 마을 지형이 학이 날아와 앉은 형상이라 무학리라 하였다.

고양이산 : 산세가 마치 고양이가 웅크리고 앉은 형상이라 붙여진 이름으로 괴미라고도 부른다.

쥐산 : 무학 서쪽 갯가에 있는 산으로 쥐와 비슷하여 쥐산이라 하였으며 붓처럼 뾰죽하다고하여 문필봉(文筆峯)이라고도 부른다.

난정리(蘭井里)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서면 난곶리(蘭串里)에 구정동(九井洞)의 일부를 합하고 난곶리와 구정동에서 한글자씩 따서 난정리라 하였다.

구정(九井) : 옛날 이 마을에 아홉개의 우물이 있다고하여 구정동이라 칭하였다.

난곶(蘭串) : 지형이 난초의 잎처럼 뾰죽하게 생긴 언덕에 형성된 마을에서 유래되었으며 난구니라고도 부른다.

난서(蘭西) : 맑은 물이 난다는 샛멀과 큰장터 마을인 장골을 합친 것으로 난곶 서편에 있는 마을에서 유래하였다.

뒷물 : 샛멀 북쪽에 있는 마을로 뒤에 우물이 있어 뒷물이라 부른다.

샘멀 : 뒷물과 큰몰 사이에 있는 샘물이 있는 마을에서 유래 되었으며 이물을 마시면 불로장생 한다는 전설이 있다.

월정(月井) : 구정동에서 초승달이 지는 것을 보면 이 마을 뒤로 넘어가는데 마치 큰달이 굴속으로 들어 가는 것 같아 월굴이라 부르다가 광복 후 월정으로 고쳐부르고 있으며 월구리라고도 한다.

장골 : 샛멀과 뒷물 사이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장이 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한리(西漢里)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서면 서장리(西場里)와 말탄리(末灘里)를 병합하여 서한리라 하였다.

당뒤(堂後) : 옛부터 당제를 지내던 당산이 있고 그 뒤쪽에 있는 마을이라 당뒤라고 한다.

말탄리 : 말탄은 끝여울이란 뜻으로 교동 서쪽 끝을 휘돌아드는 여울에서 유래하였다.

서장리 : 옛날에 마장이 있던 서편에 있는 마을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장성(長城) : 이 마을앞 해변을 따라 긴 성이 있었다하여 장성이라 부르고 있으며 또한 막개라고도 한다.

동산리(東山里)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때 서면 동장리(東場里)와 두산리(頭山里)를 통합하고 두 마을에서 한글자씩 따서 동산리라 하였다.

구려(舊閭) : 동산리에서 최초로 생긴 마을이라 구려라 부른다.

금정굴(金井窟) : 예전에 이 마을에서 굴을 파고 금을 캤다고 하여 금정굴이라 칭한다.

두산(頭山) : 마을뒤에 있는 산세가 까치머리 같다고 하여 작산리라 하다가 두산으로 고쳐 부른다고 한다.

죽산포(竹山浦) : 동산리에 있는 후미진 포구로 이곳에 정박하고 있는 배의 돗대가 마치 대나무 숲처럼 밀집되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테메 : 테메산 동쪽에 있는 마을로 테메를 머리메라고도 하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 해자를 판 것이 마치 머리에 테를 두른 것 같이 보여 테메라 하였으며, 속칭 죽산포라 부른다.

양갑리(兩甲里)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빈장산(濱長山) 남쪽의 남갑리(南甲里)와 북쪽의 북갑리(北甲里)를 병합하고 두 마을을 합쳐 이루어졌다고하여 양갑리라 부른다.

갑산(甲山) : 보통 겹재라 부르는데 겹재는 봉우리가 두 개 있는 산에서 유래하였으며 이곳에서는 빈장산을 가리킨다.

골안말 : 겹재 북쪽에 있는 마을로 앞에 갯고랑이 있어 붙인 이름으로 골말이라고도 부른다.

밀쳇고개 : 겹재 서쪽에서 동산리의 두산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몹시 가팔라서 내려갈 때 뒤에서 미는 것처럼 밀려 내려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밀치라고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