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낭당 과 기우단

TIP [사낭당(성황당)]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원추형으로 쌓아 놓은 돌무더기 형태로, 그 곁에는 보통 신목(神木)으로 신성시되는 나무 또는 장승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이곳을 지날 때는 그 위에 돌 세 개를 얹고 세 번 절을 한 다음 침을 세 번 뱉으면 재수가 좋다는 속신이 있다.
서낭당은 서낭신을 모신 신역으로서 신앙의 장소이다. 이곳을 내왕하는 사람들은 돌·나무·오색 천 등 무엇이든지 놓고 지나다녔다. 물론, 그곳의 물건을 함부로 파거나 헐지 않는 금기가 지켜짐은 말할 나위가 없다.
서낭이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서, 또는 석전(石戰)에 대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도 있으나, 민간에서의 서낭은 종교적 의미가 농후하다.
우리 나라에 서낭신앙이 전래된 것은 고려 문종 때 신성진(新城鎭)에 성황사(城隍祠)를 둔 것이 서낭의 시초라 한다. 그 뒤 고려에서는 각 주부현(州府縣)마다 서낭을 두고 이를 극진히 위하였는데, 특히 전주서낭이 유명하였다. 고려 고종은 침입한 몽고병을 물리치게 된 것이 서낭신의 도움 때문이라 하여 서낭신에게 신호를 가봉하였던 일도 있었다.  수호신으로서의 서낭은 조선시대도 널리 신앙되었다. <한국민족화대백과사전>

• 석모리 사낭대

삼산면 석모리에서 보문사로 가는 낙가산의 북쪽 중턱 길가에 있다. 오가는 사람들이 던져 쌓인 돌무더기로 서냥대라고 한디. 


• 고능리 성황당

황당(서낭당)은 산을 중심으로 산악숭배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고 동제당으로 신앙되기도 한다. 대개의 경우 산신은 산을 주관하며, 그 아래에 사는 마을 주민들도 수호한다고 믿어 동제당의 성격을 가진다.

성황당(서낭당)은·당산·산제당 등의 명칭을 가지는데 고능리 성황당은 동제당으로 신앙이 되었으며, 고능리 아침가리에서 백운곡으로 통하여 읍내로 가는 옛길 고갯마루에 위치한 성황당으로 상수리나무를 신목으로 삼아 삼색천 등을 걸고 돌을 쌓아 마을을 안녕을 기원하던 곳으로 돌탑이 쌓여 있었으나 지금은 허물어져 흔적만 남아있다.


• 내리 후포사단

약 400년 전 나주정씨 후손들이 쌓았다고 하는데 그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마을에 큰 일이 있을 때나 가뭄에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 그리고 풍년을 비는 기곡제들을 이곳에서 지냈고 한다. 원통형으로 돌을 쌓은 신좌는 높이 230cm 둘레 530cm이며 제사는 2월과 8월 그리고 동지와 섣달그믐에 지냈으며 또한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풍요를 기원하고 마을의 안녕을 빌었다고 전해진다.


• 신봉리 우상막


Ο 마니산 삼층석탑

강화군 화도면 덕포리 찬우물골에 1930년 년경에 조성하였다는 기록 뿐 누가 무엇을 위하여 조상하였는지 알 수 없다.

 

< 출처 : 마리지 >